37만 9200시간.
한 평생 사람이 속옷을 입고 지내는 시간이라고 한다. 하긴, 침대에서 나와 가장 먼저 입었다가 일과 후 잠자리 들기 전, 가장 나중에 벗는 게 속옷이다.
긴 시간 함께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맞는 속옷을 찾기 어려웠던 여성들을 위해, 박수영 대표는 지난 5월 '여성을 아름답게 만드는 맞춤형 속옷, 소울부스터 (https://www.soulbooster.co.kr)' 를 런칭했다.
소울부스터 웹사이트 (자료: 소울부스터)
ZOYI: 소울부스터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
박수영 대표 : '소울'은 답답한 마음을 풀어헤치다라는 뜻이다. 옷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고, 본인이 보이고 싶은 모습으로 아름답게 연출하여 여성들의 자존감을 올려주고 싶은 마음에 소울부스터라는 이름을 지었다.
소울부스터 박수영 대표 (사진: ZOYI)
ZOYI: 기존 속옷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박수영 대표 : 대부분의 여성 속옷은 디자인만 강조한다. 속옷 자체는 예쁜데 입었을 때 몸의 어딘가 잘 맞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람마다 가슴 모양이 다 다른데, 20만원 넘는 일부 보정 속옷을 제외하면 이를 고려한 속옷이 거의 없었다.
소울부스터는 단순 사이즈 뿐 아니라 여성의 체형과 원하는 핏에 따라 342가지(브래지어 330가지 + 팬티 12가지) 디자인을 만들었다. 가격은 백화점보다 저렴하지만 입었을 때의 만족감은 더 높다. 또한 전 제품 KC인증을 획득하였다. 신체 주요 부위에 오래 닿아야 하는 만큼 염료 선택 하나에도 신중을 가했다.
ZOYI: 원래 회계사였다고 들었는데,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박수영 대표 : 어릴적부터 엄마가 강릉에서 옷가게를 하셔서 옷에 관심이 많았다. 대리점 중 하나를 맡아 운영해 본 적도 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회계법인에서 기업들의 M&A를 담당하는 회계사로 일했는데, 더 늦기 전 내 사업을 해야겠단 생각에 퇴사를 결심했다.
바로 창업한 건 아니다. 처음엔 동대문 의류를 사입해 판매하는 온라인 의류 쇼핑몰에서 일했다. 하지만 옷을 팔다보니, 몸매좋고 예쁜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제안한 디자인을 시장에 밀어넣는 동대문의 의류 판매 방식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무리 예쁜 옷이라도 체형이 맞지 않으면 덜 예뻐보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스타일을 즐기려면 체형이 중요하단 깨달음을 얻었을 무렵 패스트트랙아시아의 박지웅 대표를 만났다. 속옷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단 생각에 공감하여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ZOYI: 시장 조사랑 제품 기획은 어떻게 했나?
박수영 대표: 초반에는 온라인 여초 커뮤니티에서 속옷과 관련해 오가는 이야기에 많이 귀기울였다.
'브래지어', '팬티' '에메필' '초모리'등등... 속옷과 관련된 글은 모두 검색해서 읽어보았다. 읽은 댓글만 3만개 정도 된다. 의외로 속옷 자체의 디자인보다 '입은 후 뭔가 예뻐 보이는' 느낌을 신경쓰는 사람이 많더라.
다음으로 누가 체형에 대해 가장 강력한 니즈를 갖고 있을까, 어디에 가면 그런 사람들이 정보를 교류하고 있을까 고민했다. 갖고 싶은데 갖지 못한 사람들이 제일 간절하지 않을까? 그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트렌스젠더 카페를 찾아가고 인터넷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떻게 꾸미고 무슨 제품을 쓰는지, 어떤 성형외과를 이용하는지 등을 관찰했다. 가슴수술을 하는 성형외과에도 찾아가서 필러 몇CC를 넣었을 때 변화가 얼마나 생기는지 배우고, 이를 스펀지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지 연구했다.
백화점, 로드샵 등 오프라인에서 파는 매장 및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판매되는 속옷도 모두 조사했다. 같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보이는 제품 제외하고 보니 국내에 3천개 정도 디자인이 있더라. 가격대, 디자인, 사이즈, 치수, 색상 등등을 기준으로 모든 제품을 분류하고 분석해 보았다.
ZOYI: 치밀함이 느껴진다… 준비과정이 어렵진 않았나
박수영 대표 : 제품 기획은 사실 재미있게 했는데, 힘든 건 그 다음이더라.
체형과 핏에 따라 342가지 유형의 속옷 패턴이 나왔는데, 공장에서 그걸 다 다른 제품으로 인식했다. 보통 브래지어는 한 번에 한 제품씩, 공장 라인에서 쭉 밀면서 생산하기 때문이다.
한 제품 당 보통 3,000장, 아무리 못해도 1,000장은 생산해야 물량을 받아줄 수 있다고 하는데, 342종류를 각각 수천장씩 생산하려니 재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마케팅 비용도 못건지겠다 싶었다.
고민 끝에 브래지어의 각 요소별로 모듈을 나눠 보았다. 몰드, 밴드, 끈 등등... 패턴 별로 모듈화를 해서 생산해 두었다가, 주문온 직후 공장에서 조립해 출고하면 재고비용을 줄일 수 있겠더라.
업계 최초로 모듈화 생산방식 도입...재고부담 줄어
문제는 모듈화 생산을 해본 공장이 없다는 거였다. 제품 생산을 하기 위해 받은 명함만 200개인데, 단 2 명만이 해볼 수 있겠다고 답변을 주셨다. 그 중 한 곳과 생산을 진행하게 되었다.
치밀한 연구결과 끝에 342가지 디자인이 나왔다 (자료: 소울부스터)
ZOYI: 공장 측에서도 가능성을 본 건가
박수영 대표 : 마침 공장 사장님께서도 재고비용을 줄이면서 물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계시던 차였다. 속옷의 중요 판매처 중 하나가 홈쇼핑이였는데, 한 방송에서 팔리고 남은 재고를 다른 방송에서 또 팔기 어려웠기 때문에 재고부담이 상당했던 것이다. 모듈화 방식을 도입하면 공장 또한 재고부담을 많이 덜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다만 양쪽 다 모듈화 생산이 처음이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속옷 몰드가 3D형태라 생각보다 제작 난이도가 높더라. 1, 2월 추운 겨우내 주 3회씩, 사무실에 출근하기 전 새벽마다 경기도의 공장을 방문했다.
사장님께서 새로운 시도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다. 간 김에 공장 직원 분들께 페이스북 광고하는 방법도 알려드리고 영업팀장님이랑 식사도 하면서 소위 ‘요즘 트렌드’를 많이 알려드렸다.
ZOYI: 고생한 만큼 생산이 잘 이뤄져서 뿌듯할 것 같다.
박수영 대표 : 큰 산을 넘은 기분이다. 5월에 드디어 쇼핑몰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런칭 초기라 가입고객을 확보해 나가는데 집중하고 있다.
ZOYI: 판매는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나?
박수영 대표 : 온라인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오프라인의 경험까지 온라인으로 가져오는 데 집중했다.
속옷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뒤 백화점 속옷 매장만 어림잡아 20군데를 갔었다. 가서 물건을 사기도 하고 때로는 몇 시간 동안 구경하면서 사람들이 구매하는 방식을 관찰했다.
오프라인의 장점은 고객이 직접 상담받고 옷을 입어본 뒤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직접 입어보고 사는 사람이 열 명 중 두 명밖에 안되더라. 사실 나부터가 모르는 사람한테 내 몸을 보여주는 데 거부감이 들었다. 겉옷을 벗지 않고도 체형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또 속옷 가게 중 체형을 고려한 추천을 하는 곳이 없었다. 점원들은 대부분 사이즈를 체크한 뒤 디자인만 추천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 같은 경우는 한 곳을 제외하고는 사이즈도 다 틀리더라. 고객의 체형을 잘 상담하고 추천해 줄 수 있다면 오히려 우리가 오프라인 속옷 매장 보다도 더 심층적인 추천을 해줄 수 있겠단 확신이 들었다.
ZOYI: 온라인에서 그런 경험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었나
온라인 상에서도 오프라인 매장의 숙련된 점원 못지않게 전문적인 상담을 해 줄 수 있게 하기 위해 두 가지 축을 준비했다. 첫 번째는 소울부스터(Soul booster)모델을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이고 두 번째가 채널IO를 통한 고객 맞춤 상담이다.
우선 체형분석퀴즈는, 구매에 앞서 정확한 체형을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를 들어, 똑같이 키가 165cm인 사람이라도 손 끝이 허벅지의 어느 부분에 위치했는지에 따라 167cm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고 163cm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귀여운 느낌의 체형이 있는가 하면 글래머러스한 느낌의 체형이 있다. 이런 것들을 잘 고려해서 옷을 입으면 태가 예쁘다.
이 질문들에 모두 답변을 하고 나면 분석을 토대로, 그 사람 체형에 맞는 옷들이 추천된다.
체형분석퀴즈를 모두 풀고 나면, 체형에 맞는 옷들이 추천된다 (자료: 소울부스터)
추천된 제품들 중 추구하는 컨셉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면 된다. 무조건 글래머러스한 모습을 연출하는 속옷이 아닌, 때와 장소에 맞는 컨셉의 속옷들을 추천해 주고 있다. 데이트가 있는 날엔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한 속옷을, 중요한 미팅있는 날엔 프로페셔널한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한 속옷을 고르면 된다.
ZOYI: 퀴즈를 풀어봤는데 은근히 어렵더라, 내가 내 몸에 대해 이렇게 몰랐나 싶기도 하고.
박수영 대표: 아마 대부분 그런 질문들에 처음 답해봤을 것이다.(웃음) 그래서 답변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고객들을 상담해 주기 위해 채널IO를 달았다.
온라인으로 구매하다 보니 ‘그래서 이게 진짜 맞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문적인 상담을 해 주는 것이 목표다. 특히 우리 고객들은 핏 확인을 위해 옷 입은 사진을 많이 보내는데 이런 상담을 통해 제품 추천의 정확도를 올릴 수 있다.
홈페이지 하단의 '바디 아키텍트'가 문의에 답해준다 (자료: 소울부스터)
ZOYI: 런칭 때부터 채널IO를 사용했는데,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시간과 장소의 번거로운 제약 없이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나의 경우 모바일 앱에서 응대하는 경험이 편리해서 시간될 때마다 수시로 확인하고 직접 응대하는 편이다. 지난주 토요일 밤엔 5명을 상담해 줬는데 브라가 바로 10개 팔렸다. 뿌듯하더라.
제품에 대한 고객 피드백을 받는 창구로도 활용하고 있다. 결국 핵심은 좋은 제품이니까. 가능한 의견을 많이 듣고 이를 차기 제품에 반영하려 하고 있다.
채널IO 이용해 고객과 수시로 대화..."구매 늘고 피드백도 들어요"
소울부스터의 목표가 키와 이미지에 맞게 상체와 하체를 모두 보정해 주는 것이라, 하반기에는 엉덩이 골반 보정 속옷을 준비하고 있다. 브라와 달리 이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라 더 많은 문의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 소울부스터가 제품에 대해 가진 상상력의 빈틈을 고객들이 메꿔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채널응대화면
ZOYI: 챙길 것들이 많아 보인다.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어디인가?
박수영 대표 : 당장은 런칭 초기라 회원 가입에 집중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키워드 광고를 통해 사이트 유입을 늘리는 일과, 구글 어날리틱스랑 내부 데이터 보면서 가입 퍼널을 개선해 나가는 일을 모두 해보고 있다.
ZOYI: 이벤트 기반으로 이커머스 퍼널 볼 거면 믹스패널도 추천한다.
퍼널관리 하면서 실제로 지표들이 개선되고 있는지?
체형 퀴즈의 경우 사람들이 풀기 어려워 도중에 중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람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질문 내용과 순서를 바꾸고 A/B테스트를 진행해가며 개선했더니 끝까지 문제 푸는 사람이 13% 증가했다. 회원가입의 경우도 페이스북으로만 회원가입을 받던 때에 비해 네이버, 카카오 로그인 버튼을 붙이고 나니 가입자가 세 배 늘었다.
ZOYI: 제품에 대한 고객 만족도는 높은 편인가?
박수영 대표 : 런칭한지 얼마 안돼 단언하긴 이르지만, 재구매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나 사서 입어본 고객이 다시 와서, 다양한 디자인으로 서너개씩 추가 구매를 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최근엔 같은 집에 사는 자매가 구입을 했는데, 처음에 어드민상 오류인 줄 알고 개발팀과 한바탕 소동을 치르기도 했다.
채널IO를 통해 후기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생각보다 속옷에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들이 많구나, 소울부스터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구나 느낄 때 참 보람있다.
채널 IO를 통해 고객이 후기를 남겨줄 때, 가장 보람된 순간이다 (자료: 소울부스터)
물론 불만족한 분들도 계시다. 초반에 우리의 퀴즈가 어려워 사이트를 이탈하신 분도 계셨고, 사이즈가 충분하지 못한 탓에 물건을 구매하지 못한 분들도 계셨다. 이런 이야기도 채널IO를 통해 듣고 있는데, 최대한 빨리 대처해 나가는 중이다.
ZOYI: 매출 규모가 점점 커질텐데, 확장성에 대한 대비도 중요할 것 같다.
채널IO 응대 데이터의 경우 점진적으로 매뉴얼화를 해 나가 응대 속도를 단축시키려고 한다. 지금도 주요 질문 내용들에 대해서는 빠른 답변 기능을 사용하고 있다.
체형분석퀴즈는 알고리즘의 정확도를 높여 최대한 자동화를 이루는 것이 목표다. 궁극적으로 챗봇 자동화까지 할 수 있다면, 규모가 커진 후에도 오프라인같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ZOYI: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소울부스터 속옷을 입고나서 옷 태가 달라졌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몸에 맞는 속옷을 입었을 때 따라오는 편안함은 덤이다. 장기적으로는 몸에 잘 맞는 겉옷도 함께 제안해 보고 싶다. 소울 부스터라는 이름처럼,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찾고 더 당당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ZOYI: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잠 오지 않는 밤에는 대표가 채널로 직접 상담해 드리고 있답니다. 편히 연락주세요!